지난 13일 하나로통신이 ADSL 모뎀 자급제를 공식 시행한다고 발표하면서 모뎀자급제가 본 궤도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로의 내부 시행안을 보면 도대체 왜 자급제를 도입하는건지 의아해집니다.

본래 ADSL 모뎀자급제를 도입하게된 이유는 지난 상반기 한국통신 ADSL 입찰에서 삼성전자가 공급권을 독점한 이후, 비 삼성권 모뎀업체들의 판로를 뚫어주고, 사용자들에게 모뎀 선택권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뎀 자급제 실시로 혜택을 받아야하는 업체들은 현재 한통, 하나로에 납품을 못하고 있는 업체들인 겁니다. 그런데 하나로의 자급제 관련 업무지침을 보면 이런 기본 취지가 영 무색해집니다.

하나로통신 마케팅실은 이달 초 각 지역 영업소 및 고객센터에 ‘모뎀자급제 관련 업무처리지침’을 하달했습니다.

이 지침은 ▲시장자급제보다 사업자자급제 부각 ▲모뎀 판매는 가능하면 신규고객 위주로 ▲현 임대모뎀 고객의 시장 자급제 전환은 최소화 ▲비인증 모뎀에 대한 서비스 개통 불허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지요.

기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사업자 자급제 부각’과 ‘비인증 모뎀에 대한 서비스 개통 불허’입니다.

인증 모뎀에만 서비스를 개통한다는 것은 물론 옳은 정책입니다. 사용자 보호를 위해서는 응당 일정 수준에 달하는 제품이 유통돼야 하니까요.

하지만 하나로는 지난 15일 사업자 자급제 도입에 이어 내달 1일부터 시장 자급제를 시작한다면서, 모뎀업체들이 모뎀을 판매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증시험은 서두르지 않고 있습니다. 인증받은 것과 다름없는 기 납품업체들의 모뎀이 있으니 급할 것 없다는 겁니다.

인증받지 않은 모뎀으로는 망개통을 불허한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정작 인증시험은 시행하지 않는 바람에, 이미 모뎀을 판매했던 업체들은 “보름쯤 전부터 하나로 ADSL을 사용하는 고객들로부터 반품 시비가 부쩍 늘고 있다”고 울상입니다.

한편, 사업자 자급제를 볼까요. 고객이 모뎀업체에서 모뎀을 구입하지 않고 통신사업자에게서 모뎀을 사게 한다는 것은, 결국 통신사업자에 납품한 업체들만 살아남는 현 체제와 별반 달라질 게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ADSL 서비스에 가입하는 고객에게 통신사업자가 모뎀을 파는 것은 마치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에 익스플로러를 끼워파는 것과 꽤 닮은 형태입니다.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서비스를 팔면서 ‘모뎀’이라는 관련 상품을 끼워파는 셈이니까요.

뿐만 아니라 통신사업자가 모뎀을 직접 판매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회선 사업자가 본업인 회선사업에서 유통업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넓힌 셈이 됩니다.

통신사업자의 원스톱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더 편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국망을 가진 사업자와 중소 모뎀업체의 모뎀 판매 영업 대결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싸움인 겁니다.

자급제가 시행돼도 ADSL 서비스의 기본 뼈대는 기존 모뎀임대제입니다. 임대제가 기본인 상태에서 가입자가 원하는 경우 구입모뎀도 쓸 수 있다는 거죠.

사실 전체 ADSL 사용자 가운데 많아야 10% 정도가 자급 모뎀을 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 자급제의 영향은 미미하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통신사업자들이 자급제에 대해 보이는 알레르기 반응은 지나친 면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 아이뉴스24 이혜경 기자 cosmo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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