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메이저리그

최초의 프로야구 리그인 내셔널 어소시에이션(the National Association of Professional Base Ball : 전국 직업 야구 선수 연합)은 최초의 메이저리그이기도 하다. 어소시에이션에는 당대 최강의 팀들과 최고의 선수들이 등록되어 있었다. 선수들은 리그 운영에 직접 참여했으며 계약과 이적에 있어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였다. 구단의 주주나 투자가들은 금전적인 보상보다는 위신상의 문제, 즉 자신들의 클럽이 강팀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클럽의 재정을 지원했다. 이는 마치 예술가와 후원자의 관계와 같은 종류였으며 투자가들의 이익보다는 선수들의 연봉이 우선시되었다.


올림픽스 클럽(1871년)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은 1871년 3월 17일 저녁 단 한번의 저녁 모임에서 탄생했다. 새 어소시에이션은 예전의 아마추어 어소시에이션과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어소시에이션의 규약이 직업적인 이해 관계에 맞게 변형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기 규칙 등은 예전 어소시에이션의 것을 그대로 채택했다. 그리고 리그에 새로이 참가하려는 클럽은 10달러의 가입비를 물어야 했다. 이 금액은 오늘날의 메이저리그 프랜차이스에 붙여진 가격표와는 매우 대조가 된다. 새 어소시에이션 역시 고정된 경기 스케줄을 작성하지 않았다. 각 팀은 상대팀과 한 시 즌에 다섯 경기 씩을 치르게 되어 있었고 경기 날짜와 시각은 클럽 서기들 간의 서신왕래를 통해 추후 결정되었다. 한 시즌에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팀에게 우승기가 수여되었으며 챔피언십 위원회(championship committee)는 막 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찰리 굴드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은 1871년에서 1875년까지 야구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지만 구조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1875년 어소시에이션의 해체는 이미 탄생 때부터 예고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선수들이 주도한 리그였기 때문에 선수나 팀에 대한 통제는 자연 약할 수밖에 없었다. 10달러라는 낮은 가입비는 리그 참여가 생각보다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 클럽들에게 쉽사리 탈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또한 경기 스케줄이 없었기 때문에 경쟁 관계에 있는 팀들은 자기들 사이에 할당된 경기를 거의 치르지 않았다. 자원 심판 제도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클럽들은 입장권의 가격과 입장 수익의 분배 문제로 다툼을 벌였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팀들이 손실을 입었으며, 그로 인해 투자자들과 선수들 사이에는 갈등이 고조되어 갔다. 비판자들은 선수들이 주도하는 리그는 계약 파 기, 음주 등과 같은 선수 규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고정된 스케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하자 결국 어소시에이션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소시에이션이 존속 기간 동안 관중들에게 수준높은 야구를 제공했다는 점은 사실이다.


하트포드 팀(1875년)


어소시에이션의 1871년 시즌은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즈,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 해리 라이트의 보스턴 레드스타킹스 사이의 3파전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 중 시카고 팀은 7,000 좌석의 목조 구장과 4,500달러 연봉의 스타를 보유한 가장 앞서가는 구단이었다. 그러나 이 구장은 그해 발생한 시카고 대화재 때 소실되었다. 1위를 달리고 있던 시카고 팀은 잔여 경기를 원정 경기로 치를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3위로 시즌을 마감한다. 이후 시카고 팀은 1874년까지 리그에 참가하지 못했다. 71년 시즌에 어슬레틱스와 레드스타킹스는 22승으로 동률을 기록했으나 챔피언십 위원회는 그 해의 우승팀으로 어슬레틱스를 선정했다. 패수가 더 적었기 때문이다. 해리 라이트는 원래 예정되어 있던 경기를 더 많이 치룬 팀이 우승을 해야 한다고 항의했으나 위원회는 기각했다. 시즌 도중 잡음은 끊이지 않았고 게다가 대화재라는 악재가 겹쳤다. 하지만 그럭저럭 성공적인 데뷔였던 셈이다. 첫 해에 대부분의 팀들이 이익을 기록했으며 단 한 팀만이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한편 선수들은 총회에서 브루클린 애틀랜틱스 소속 선수인 밥 퍼거슨을 회장으로 선출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려고 했다.


앨 스폴딩의 초상화


1872년 리그에 참가한 클럽은 모두 11개였다. 해리 라이트가 이끄는 보스턴 레드스타킹스는 가장 두드러진 팀 이었다. 보스턴 구단은 시즌 통산 39승 8패를 기록했다. 보스턴 구단은 투수 앨 스폴딩, 유격수 조지 라이트, 내야수 로스 반스와 같은 쟁쟁한 스타 플레이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반스는 번트의 명수였는데, 당시의 페어-파울 볼 규정 때문에 반스는 더 많은 출루를 기록할 수 있었다. 보스턴 레드 스타킹즈는 이후 4년 연속으로 내셔널 어소시에이션 리그에서 우승한다. 그들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특별한 팀'이었다.


1873년이 되자 리그의 팀은 아홉으로 줄었다. 보스턴 레즈은 필리스, 혹은 화이츠로 불리던 필라델피아 팀을 누르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이 해 보스턴 레즈는 43승 16패를 기록했다. 신인이었던 포수 짐 화이트와 외야수 짐 오러키가 우승의 주역이었다. 리그 전체의 수입은 줄어들었지만 이에 불만을 품고 리그에서 탈퇴한 클럽은 단 한 구단이었다. 1874년 라이트의 레즈는 52승 18패를 기록하며 뉴욕 뮤추얼스를 7.5 게임 차로 따돌리며 우승했다. 라이트의 보스턴 팀은 스케줄을 모두 소화했던 유일한 구단이었다. 그 해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는 영국 원정을 떠났다. 영국의 스포츠 애호가들에게 '미국의 국기'인 야 구를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사상 최초의 이 야구 포교는 어쩌면 당연하게 실패로 끝났다. 1874년의 어소시에이션의 재정도 적자 투성이였다.


시즌 도중 단 한 팀만이 탈락했을 뿐이지만 도박 및 짜고 하는 경기라는 비난은 리그의 명성을 갉아 먹었다.


로스 반스

그리하여 1875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은 막을 내렸다. 어쨌든 1875년의 최강팀은 보스턴 레즈였다. 스폴딩, 반스, 오러키, 화이트, 조지 라이트가 이끈 보스턴은 다른 12개 구단을 누르고 71승 8패의 기록으로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보스턴의 타자들은 타격 랭킹 1위에서 4위까지를 독차지했으며 2위와의 게임차는 무려 15경기였다. 그러나 그들의 독주는 모두 13개 구단이 펼친 1875년의 레이스에서 일곱 개의 클럽이 도중에 탈퇴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 특정 팀의 독주, 재정적 손실, 선수들에게 부여된 과도한 자유 등의 문제로 인해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시대는 구단주들에 의해 마련되었다.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의 주인이었던 윌리엄 허버트 (William A. Hulbert)는 NA를 대체하는 새로운 메이저리그인 내셔널리그(National Leagur)의 창립을 선포했다. 새로운 리그에서 주요 권한은 구단주들에게로 귀속되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의 개척자 격인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을 어떤 기준에서든 '실패한 리그'라고 부를 수는 없다. 조직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NA가 프로 야구를 번성시킨 것은 사실이다. '야구의 아버지'라고 일컫어지는 헨리 채드윅은 두드러진 공헌을 했다. 채드윅은 NA의 게임 기록과 통계를 기사와 가이드 북을 통해 정리했다.


야구의 아버지 헨리 채드윅

1876년 그가 고안한 박스 스코어는 현재까지도 야구 기록에 이용되고 있다. 채드윅의 공헌에 힘입어 야구는 신문 지상을 통해 보다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채드윅은 투수들에게 손목을 사용하는 커브볼을 허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를 10인제 경기로 만들려 한 채드윅의 시도는 무산되었다. 내셔널 어소시에이션 시절 가장 중요한 인물로는 해리 라이트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가장 성공한 프로야구 흥행사였으며, 그의 보스턴 팀은 188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선수단 연봉을 기록하고 있었다. 라이트는 보스턴 팀의 연간 35.000달러 규모의 연봉을 관리하면서, 구장 사용, 장비의 설계와 조달, 광고, 선수들의 훈련과 보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문에 손을 댄 선각자이기도 했다. 라이트의 노력은 그의 팀이 NA가 존속한 5년 동안 네 번 우승함으로써 보답을 받았다. 내셔널 어소시에이션 시절 해리 라이트는 진정한 프로야구의 아버지였으며 또한 NA는 해리 라이트의 리그이기도 하다.